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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非常)한 시대에 비상(飛翔)을 다시 생각한다. 2020-10-26 10:26:42
작성자  동문회보 webmaster@hanyangi.net 조회  875   |   추천  117



1. 「방콕, 집콕」의 낯선 시간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우리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추석이 되어도 고향방문을 자제하게 하는「방콕, 집콕」의 시간들, 변화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미국의 석학 헨리 키신저 박사가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과 이후로 역사가 나뉜다는 뜻으로「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세계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라고 갈파하였는데, 사실 그렇게 되어 가고 있음을 점점 깨닫는다. 법률이 생업수단인 필자에게 민법과 형법 보다는 감염병예방법, 집합금지명령, 문진표 작성, 동선파악이라는 용어가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이라는 용어가 가장 실감나는 말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좀 더 낯선 언어들을 나열하자면, 「언택트, 팬데믹, 재난유토피아, 동학개미」같은 용어들이 아닐까 한다.

바뀌는 것은 필시 어려움, 낯섬을 동반한다. 이 정답이 없는 혼동시대를 통과하면서 어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첫째는 사회적 접촉을 적게 하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인 대면접촉을 줄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의미 있는 분석이기도 한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무래도 정부의 대책은 물리적 대면접촉에 집중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우리나라의 K방역은 코로나 문제에 관하여 「성공적인 대응」으로 평가받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감염자는 물론 사회적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면접촉의 감소만 강조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그 어떤 의미에서든지 다소라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회적 접촉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좀 더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런 접촉이 강화되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은 각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렇다. 그것이 필자의 체험이자 확신이다. 공감하기에는 너무 낡은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필자는 개인적 체험, 고통의 시절을 통과하였던 견고한 인내를 회상하면서 오늘의 「방콕, 집콕」의 시간을 감당하고 있다. 극한의 고통을 통과한 경험은 어떤 경우든 내 인생의 큰 자산이 되었고,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여기 쯤에서 그때의 일들에 관하여 몇 줄 적는 것도 이 글 읽는 이들의 공감 얻기에 도움이 될 듯하다. 고통속에서 비상을 꿈꾸었고, 마침내 날개짓을 시작할 수 있었던 그날의 오래된 기억들,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들춰보기로 한다.

 

2. 암울을 통과했던 날들

1970년말 암울하던 시절, 아주 오래 전이지만 가끔은 악몽처럼 떠오른다. 철 모르던 시절 세칭 일류고등학교를 다닌다는 끝 없는 프라이드, 그렇다 오만이라고 하여야 할 그 허세로 고등학교 3년을 마쳤을 때 사실 나는 심히 지쳐있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다. 동기생 모두 내가 꿈에도 그리던 S법대에 입학원서를 낼 것으로 예상했었다. 학업성적의 결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그 심한 피로가 현실임을 온 몸으로 직감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공무원을 하면서 서울에서 야간대학이라도 다니겠다’는 결심, 여전한 현실과잉 의식으로 「비상」을 꿈꾸었다. 「날자! 날자꾸나!」, 그러나 이상(李箱)처럼은 되지 말자! 정말로 날아보자!

1971년 봄, 꿈꾸는 동토, 그 언땅에 둥지를 틀었다. 나의 전 인생을 지배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그 「언땅에서의 첫출발」이라는 인식은 「무모한 열정이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으나, 생존을 지키는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안도감으로 지쳐있는 영혼의 현실은 「꿈」으로 바뀌었다. 「특별한 장학금」때문이었다. 이제는 정말 「날자! 날자꾸나!」 얼어붙은 땅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었다. 정확히 말하여 「한양대학교 법대 고시반」, 그것이 새로운 꿈을 꾸는 둥지였다. 그 둥지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 장래에 대한 두려움, 그 어느 하나도 확실한 것이 없었던 그 시절을 통과하였다. 목표성이 있어서였을까? 재학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그 목표성은 방향을 정하여 주는 좌표이기도 하였다.

그 시절에 적었던 매일의 일기는 늘 성경읽기로 시작하여서 영어나 독일어 단어외우기로 끝나 있었다. 중간은 모두 법률서적의 이해와 암기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그 건조한 내용들 사이사이에 「고뇌의 감성」들이 더러더러 나열되어 있다.

「새로와야 한다. 명일(明日)은 항상 잔이 넘쳐야 한다. 비록 어제까지 한 점의 흠결 없이 천개의 잔이 넘치도록 하여 왔을 지라도, 오늘 다시 하나의 잔을 준비해야한다. 그리고 쉬임없이 채워야 한다.(1973. 1. 1.). 주룩주룩 비오는 소리만 나는 밤이다. 올 한가위는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누구의 의지인가? 나는 차고 넘치는 둥근달을 보기 원한다(1974. 9. 30.). 눈매 그립고 마음은 다정해라. 여미는 옷깃마다 당신의 손길. 지금은 첫눈이 내리는 시간(1974. 11 22). 굽을 돌아 천년을 흐르는 동구밖 갯여울 모퉁이 길섶에 홀로 섯거니… 솟아라, 태양아!(1975. 1. 1.) 등등. 」

 

3. 임재범의 노래, 「비상」

고뇌의 기록들을 보고 있자니 격동의 세월을 같이 통과한 고교동창이 며칠 전 밴드에 올린 가요 하나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임재범의 비상」이라는 노래인데, 그는 그 노래를 올린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차창 밖에 펼쳐지고 있는 가을 경치가 코로나를 잊게 합니다. 마침 음악을 듣고 가다가 요즘 세태에 잘 맞는 음악이다 싶어 제 카톡 지인들과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이 노래는 최근 들어 대중의 인기를 끌며 «비상(飛翔)»하는 노래입니다. 바로 '임재범'의 «비상»이란 노래이지요. 이 노래는 1997년에 발표된 후 그동안 여러분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곡입니다. 제 나름 그 이유를 분석해 봅니다. 어둡지만 희망적인 가사, 잔잔하게 시작하다 강조가 들어가는 멜로디, 임재범 특유의 호소력‧기교‧가사 전달력이 잘 어우러진 노래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지난 8월에 방송된 TV조선 ‘뽕숭아학당’에서 <트롯맨 F4>(임영웅-영탁-이찬원-장민호) 중 한 명인 '영탁'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22살에 가요제에 나가 '임재범'의 ‘비상’을 부르고 우승을 했습니다. 그때 받은 상금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습니다”하며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이어 MC '붐'은 “영탁을 서울로 비상하게 만든 노래구나”라고 말했고, '영탁'은 '붐'에게 “저를 15년 동안 무명으로 고생하게 만든 노래입니다”라고 답해 웃음을 안겼습니다. 요즈음 대세인 <트롯맨 F4>가 '임재범'의 «비상»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실제 노래를 불렀던 게 계기가 되었을까요? 하여튼 «비상»이 «비상»하고 있습니다. 」

 

4. 다시 생각하는 비상

1975년 모교 출신 첫 사법시험 합격생이 되었던 일, 내 인생에서 첫 비상이었다. 그때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있던 고시반 후배들, 모두 집안 형편 때문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었던 상처 받은 일 많은 영혼들을 향하여 이렇게 노래했었다. 「아우야, 서리 내리는 뜻, 호두 같은 정성으로 네 뜻을 갈아 한가람의 강물처럼 도도히 도도히 흐르기만 하거라. 그리하여 그 종점에서 마침내 한껏 비상하거라! 날아올라라!」

나는 이즈음 다시 경험해 보지 못하는 새로운 현실에 함몰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자기다짐을 한다. 모두들, 특히 젊은 세대는 더욱 혼란스럽겠지만 멀리 날아 올라서 전체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시 낮게 내려와 구체적으로 문제풀이를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자면 아무래도 문제부터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비상을 해야하지 않을까? 다시 비상(飛翔), 두자를 적는다. 이 가을 날, 햇빛이 아름답다고 새로 느끼시는 분들, 「영탁」이 부르는 임재범의 「비상」, 그 노래 다시 들어보고 위로받기를! 권고 드린다. 그리고 마침내 이 비상(非常)한 시대에 한번 더 힘차게 비상하기를 기대한다. 「방콕, 집콕」 앞에 결코 움츠리지 말고, 모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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