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만명을 넘었다.
지난달 12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 경보 최고 등급인 판데믹(Pandemic)을 선언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정부, 지역사회, 시민 모두가 감염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요즘,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힘쓰는 모교 동문사회와 재학생의 사례가 화제가 되고 있다.
동문사회 기부 바람… 이재섭 조일알미늄 회장 7억원
세계가 놀란 ‘드라이브스루’ 제안한 김진용 인천시의료원 과장
이재섭 조일알미늄 명예회장
동문 성금·현물 ‘온정의 손길’ 잇따라
2월 말 대구를 중심으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일선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진과 어려운 이웃에게 써달라며 거액의 성금을 쾌척한 모교 동문들이 연일 언론에 소개됐다.
이재섭 조일알미늄 명예회장은 3월 10일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사랑의열매)에 6억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1억원을 기탁했다. 이 회장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1974년 경산에 조일알미늄을 설립해 40년 넘게 알루미늄 압연재 생산 외길을 걸어왔다. 1985년 춘곡장학회를 세우고 매년 대구 지역 고교를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과 불우환자, 장애인, 결연아동 후원 등 저소득층 복지사업을 전개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살균소독제를 유통하는 권오철 청아 대표이사는 자사가 판매하는 시설 방역용 소독 원액 ‘티엘클린’과 가정용 스프레이 ‘티엘쿠오’를 기증했다. 2월 26일 안동시에 650만원 상당, 3월 27일 영양군 보건소에 800만원 상당의 물품을 전달했다. 권 대표는 “농업용 소독제로 많이 쓰는 과산화초산이 방역에도 효과가 있다.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양군에서 태어나 안동 소재 고교를 졸업했다는 그는 “농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싶어 2018년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며 “지금은 유통 전문이지만 언젠가 제조 공장을 세워 독자적인 소독제품을 선보일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동문 스포츠인도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KBO리그 류중일 LG트윈스 감독은 3월 2일 대구 사랑의열매에 코로나19 성금 3000만원을 기부했다. 류 감독은 LG에 오기 전 대구가 연고지인 삼성라이온즈에서 줄곧 선수, 코치, 감독으로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같은 달 5일에는 V리그 OK저축은행의 석진욱 감독과 선수단이 뜻을 모아 2000만원을 사랑의열매에 전달했다. 이번 모금은 석 감독이 제안해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국민영웅’으로 불리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26일 베트남에 코로나19 방역 기금 5000달러(600여만원)를 기부했다.
연예계에서는 2월 21일 배우 이영애가 대구 사랑의열매에 5000만원을 흔쾌히 내놓았다. 이어 3월 25일 이병헌, 27일 설경구-송윤아 부부가 각 1억원을 사랑의열매에 기탁했다. 모교 연극영화학과 18학번으로 재학 중인 배우 김소현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1000만원을 기부하며 힘을 보탰다.
한편 사랑의열매가 4월 12일 발표한 코로나19 특별모금 현황에 따르면 현물 포함 약 877억4000만원의 성금이 접수됐으며, 이 중 712억1000만원은 지원 완료 또는 진행 중이다. 성금은 마스크·소독제 등 기본 방역 물품부터 의료진 방호복과 식사 조달, 돌봄 대체 인력과 취약계층 생계 지원 서비스 등에 쓰인다.
김진용 인천광역시의료원 감염내과장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제안자는 동문 의료인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승차진료형 선별진료소, 일명 ‘드라이브스루’(Drive-Thru, 이하 DT) 검사 방식을 도입해 해외의 주목을 받았다. 대상자가 차에 탄 상태에서 문진, 체온 측정, 검체 채취, 소독 등 일련의 검사를 진행한다. 인당 소요 시간은 불과 10분. 기존 선별진료소 대비 3배 빠른 속도로 단시간에 많은 인원을 검사할 수 있는 데다, 대상자와 검사자 간 접촉이 적어 바이러스 전파 위험 또한 낮다. 미국, 유럽, 일본 등 각국에서도 한국 모델을 벤치마킹한 DT 진료소를 개시했다.
이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모교 보건대학원 1기 졸업생인 김진용 인천광역시의료원 감염내과장이다. 대한감염학회 신종감염병위원회 정책 TF 소속으로, 지금은 완치된 국내 1번 확진자의 주치의를 맡기도 했다. 김 과장은 TF 동료의 부탁을 받아 효율적인 코로나19 진단검사법을 고민하다 과거 생물테러 대응을 주제로 진행한 약품 배분법 연구를 떠올렸다. 병원 밖에서 공기 중 노출을 최소화하면서도 몇천만명에게 신속히 백신을 나눠줄 수 있는 방법을 선별진료에 적용한 것. 그는 “(DT 진료소가) 미국 대통령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화제가 될 줄 몰랐다. 놀랍고 뿌듯하다”며 “틀에 박히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한양대 보건대학원에서 배운 것들이 큰 도움이 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최근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역시 동문 의료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바로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대책위원장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제안된 것은 2월 19일. 같은 달 박원순 서울시장이 △외출 자제 △전화·인터넷·SNS 소통 △개인위생 주의를 골자로 한 ‘2주간의 잠시 멈춤’ 실천수칙을 발표하면서 해당 용어가 널리 퍼졌다.
기 위원장은 을지대학교 보건대학원장,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대책위원장을 역임하고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질병의 확산 추이를 분석·예측하는 수학적 모델링 연구를 바탕으로 방역 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한편, 다수 매체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대중의 올바른 이해와 예방을 돕고 있다. 그는 최근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생활방역위원회 회의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다중시설 이용 제한 조치를 시행한 결과,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된 2월 중순 대비 코로나19 전파율이 75% 감소했다”며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일상에서도 꾸준히 실천 가능한 구체적 방역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랑의 실천을 함께’ 재학생도 코로나19 모금 동참
진단키트․나노마스크․데이터셋… 코로나에 맞서는 발명품
‘한국 과학기술의 힘’ 보여준 한양공대인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늘면서 감염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는 한국산 진단키트가 각광받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으로 47개국이 우리나라 진단키트를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39개국은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 우리나라는 국내 확진자가 한 명도 없었던 1월 중순부터 코로나19 진단키트 개발에 착수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수십만건에 달하는 검사 데이터를 축적했다는 점도 국산 키트 성능에 대한 신뢰성을 높였다.
국내 진단키트 제조업체 중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곳은 5개. 그중 하나인 씨젠은 ‘애니콜 신화’의 주역으로 불리는 천경준 전 에스원 부사장이 회장을 맡고 있다. 천 회장은 1984년 삼성전자 단말기기 개발부를 시작으로 애니콜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이후 통신연구소장과 기술총괄 부사장까지 올랐다. 씨젠 대표이사인 천종윤 씨가 그의 조카로, 과거 천 회장이 창업을 권유하며 자금을 지원해준 것이 씨젠 설립의 계기가 됐다.
씨젠이 생산하는 코로나19 진단키트 ‘올플렉스’(Allplex 2019-nCoV Assay)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4~5시간이 걸리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에만 존재하는 3가지 특이 유전자를 모두 검출할 수 있다. 2가지 유전자로 확진자를 감별하는 타사 제품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평이다. 현재 씨젠은 키트 생산량의 90% 이상을 40개가 넘는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마스크 품귀 현상이 계속된 요즘, 한 달 이상 빨아서 쓸 수 있는 나노마스크가 나왔다는 소식에 이목이 집중됐다. 김일두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나노섬유 ‘멤브레인’이 그것이다. 멤브레인 필터로 만든 나노마스크는 에탄올로 소독하거나 손세탁해도 뒤틀림 없이 KF80 수준의 차단 기능을 유지해 장기간 재사용이 가능하다. 물과 습기에 약해 오래 쓰기 힘든 일반 정전기 필터와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물질인 나노섬유가 인체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상용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만약 시판 허가를 받는다면 나노마스크가 ‘마스크 대란’ 해결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계에서는 코로나19 확산 패턴을 분석하고 향후 확진자 수까지 예측할 수 있는 데이터셋 DS4C (Data Science for COVID-19)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개발자는 모교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지후 연구원이다. 데이터셋이란 컴퓨터가 해석 가능한 형태로 정보를 수집·가공해 만든 정보 집합체로, AI 개발에 필요한 기계학습에 활용된다. 김 연구원은 질병관리본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확진자 동선에 따른 지리 정보를 더해 확진자 활동 지역이나 집단, 감염 경로 등을 알 수 있는 데이터셋을 만들었다. 이 데이터셋은 가입자만 13만명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 데이터과학자 커뮤니티 ‘캐글’에 등록된 지 일주일 만에 가장 인기 있는 데이터 1위를 차지했다.
씨젠의 코로나19 진단키트 ‘올플렉스’(Allplex 2019-nCoV Assay)
‘작은 금액이라도’ 재학생 자발적 모금
코로나19의 여파로 개강이 연기된 가운데 동문사회뿐만 아니라 캠퍼스도 취약계층과 의료진을 위한 성금 모금에 팔을 겉어붙였다. 서울·ERICA캠퍼스 총합 1220여명(이체 건수 기준)의 재학생이 십시일반 모금에 함께하며 모교 건학정신인 ‘사랑의 실천’을 행동에 옮겼다.
3월 15일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에 공개된 ‘코로나19 성금 모금 결산’에 따르면 1081명이 3차에 걸쳐 누적 모금액 2230여만원을 달성했다. 1차 모금액 200만원은 대구 사랑의열매에 금전 기부, 2차 모금액 800만원으로는 의료진에게 필요한 스크럽복(방호복 안에 입는 면 수술복) 300벌을 구매해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 전달했다. 3차 모금액 1230여만원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630만원)와 굿네이버스 대구경북본부(600만원)에 나눠 기부했다. 재학생의 열렬한 관심에 힘입어 1차 모금은 개시한 지 2시간 만에 목표액 200만원을 달성해 마감됐으며, 3차 모금은 목표액 설정 없이 해당 기간 모인 금액 전액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부자 이름은 ‘한양대학교 학우 일동’으로 통일했다.
모금은 정책학과 △김도영 △조성재 △박은빈 △신효정 학생의 주최로 3월 1일 오후 4시부터 9일 자정까지 진행됐다. 이들은 실시간 모금 현황을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공유하고, 채팅방 내 모금 참여자의 투표로 기부처를 선정했다. 모금 취지에 공감한 총학생회 비대위 및 중앙운영위원회도 홍보 등 각종 지원에 나섰다. 조성재 학생은 “처음엔 넷이서 5만원씩 기부하려고 했다. 그러다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와 모금을 시작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한양대 학우들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한 데 자부심을 느낀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 “인원 파악을 위해 참여자의 학과와 학번을 받았는데, 학교를 이미 졸업했을 학번대 분들도 많이 동참해주셨다. 그걸 보면서 한양 가족의 힘을 느꼈다.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월 19일 ERICA캠퍼스 홍보대사 ‘사랑한대’는 ‘한양대학교 ERICA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약 233만원을 기부했다. 모금은 3월 11일 오전 9시부터 18일 자정까지 진행됐으며, 총 135명이 참여했다.
최윤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