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첫 장편소설 ‘모나코’를 선보인 김기창 작가가 작년 10월 장편소설 ‘방콕’으로 돌아왔다. ‘방콕’에서는 인간 모두가 존엄할 수 없음을, 그리고 존엄을 훼손당한 한 사람의 고통이 타인에게 연쇄적으로 전가되는 악순환을 냉혹하게 그려낸다.
베트남 출신 외국인노동자 훙은 공장에서 손가락을 잃고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해고당한다. 공장주를 향한 복수심으로 그의 딸을 위협하지만, 결국 새 삶을 찾기 위해 방콕으로 떠난다. 방콕에서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이 지독한 우연으로 거미줄처럼 얽히고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듯, 고통의 연쇄작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타인에게 예상치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콕은 소설 속 주요인물들이 모여드는 무대다. 김 작가는 방콕 테러사건을 듣고 천국 같은 방콕도 정치, 사회적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방콕을 두 번째 소설의 배경으로 정했다. 천사들의 도시라 불리는 방콕에서 인물들 간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김 작가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다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윤리 기준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공장주 아들의 여자친구는 동물 보호에는 목숨을 걸고 앞장서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고충에는 관심이 없다. 어떤 커플은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쪽은 쾌락을, 다른 한쪽은 돈을 원하는 관계다. 각양각색의 등장인물들은 인간과 관계에 대해서, 더 넓게는 삶에 대해서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김 작가는 “범죄나 빈곤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이 소설도 결국 강자에 의해 짓밟힌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의 하드보일드(hard-boiled) 소설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 휘몰아치는 전개처럼 ‘방콕’의 후반부는 쉼 없이 절정으로 달려간다. 미사여구 없이 간결하고도 냉소적인 묘사로 사건을 풀어내며 독자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그의 작품이 인간의 존엄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쉽고 빠르게 읽히는 이유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그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길이었다. 김 작가는 모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졸업 후에는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도전했다. 방송국에서 작가도 했고,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 같은 전문 경제지부터 길거리 무가지까지 가리지 않았다. 나중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쳤다.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해질 즈음, 그는 첫 작품 ‘모나코’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모나코’로 2014년 등단해 민음사 제38회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는 “졸업 이후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내 글이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는데, 상을 받으니 글을 계속 써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설가로서의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은 김 작가. 사회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낯선 시선으로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요즘은 신작 준비로 정신이 없다. “‘방콕’은 공간 3부작 중 ‘모나코’를 이은 두 번째 작품입니다. 공간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신작을 준비 중입니다. 전작들과 다르게 마지막 편에서는 우리 사회의 밝은 면을 조명하고 싶어요. 머지않아 기후변화를 주제로 다룬 단편집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글=박정연 학생기자
사진=최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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