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단어로, ‘허위 사실과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기자로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뜻하는 은어다. 이 같은 신조어는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보여준다. 정진영 동문은 현직 문화일보 기자로서 부당한 현실을 과감히 고발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의 소설 ‘침묵주의보’는 학벌주의에 좌절한 어느 인턴기자의 자살로 시작된다. 소설의 주인공 박대혁 기자는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파헤치다 뒤에 가려진 진실을 마주한다. 그는 언론계의 씁쓸한 민낯을 바라보며 불의에 침묵하는 시대에 환멸을 느낀다. “결국 이 책은 조직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기자니까 언론사에 관한 이야기를 쓴 것이지, 어느 조직이든 속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이 책을 다른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다들 공감했다. 결국 조직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조직에서 침묵이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만드는가’ 이런 고민과 함께 책을 읽으면 좋겠다.”
소설에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의 갈등도 함께 그려진다. 편집국장은 참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였으나 먹고 살기 힘든 현실 앞에서 결국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자살한 인턴기자의 동료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외면한다. 정 동문 또한 불의 앞에서 두려움에 침묵한 적이 있었고, 후회가 남는다고 한다. 정 동문은 “불편한 현실에 대해 모두가 작은 소리로라도 한 마디씩 하고 살자”며 “사실 나도 그저 이 책을 통해 나름의 저널리즘을 할 뿐이다”고 말했다.
“개는 절대 이유 없이 짖지 않는다. 개 한 마리가 광장에서 짖는다면 무심코 넘어가겠지만, 개 100마리가 동시에 짖는다면 무서울 것이다. 개가 짖지 않으면 주인은 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용기를 내어 침묵을 깨고 떠든다면,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서 큰일을 이뤄낼 수 있다. 떠드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하다. 나는 정권교체를 이뤄낸 지난 촛불시위가 바로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정 동문에게 글이란 현실의 부조리에 눈 감지 않고 작게나마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침묵주의보’ 이전에도 그는 장편 ‘발렌타인데이’, ‘도화촌 기행’ 등의 소설을 썼고, 동시에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글쓰기와 매우 질긴 인연을 맺고 있다. 10대 시절 본인이 작곡한 곡에 가사를 붙이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 글쓰기와의 첫 만남이었다. 정 동문은 모든 사람들이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설을 쓰는 순간만큼은 한 주제에 대해 깊고 신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절에 들어가 침묵주의보를 쓰면서 처음엔 날이 서 있었지만, 쓰다 보니 모든 등장인물을 이해하게 되더라. 소설을 많이 쓰고 읽을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그는 기자로서, 소설가로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년 12월 7일 나주시에서 열린 ‘제2회 백호임제문학상’에서 ‘침묵주의보’로 본상을 수상했고, 이 책은 올 하반기 JTBC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차기작은 로맨스 소설이다. 재학 시절 한대신문 문예상에 당선된 장편 ‘발렌타인데이’를 각색한 작품이다. “시상식에서 작가라고 불리니 부끄러웠다. 작가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정도가 될 만큼 부지런히 소설을 쓰고 싶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나갈 것이다.”
글=최동해 학생기자
사진=최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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