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시각과 섬세한 연출로 무대를 채우다
이기쁨 연극연출가
‘수저가 올려진 밥상은 권투가 벌어지는 링과 같다. 여자는 그 위에 홀로 서서 날아오는 시선을 맞는다.’ 혼밥을 가르치는 학원이라는 소재로 주목을 받았던 윤고은의 단편 소설 ‘1인용 식탁’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1인용 식탁’은 사각 링을 연상시키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혼밥을 배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강약약 중강약약’의 리듬을 이용해 혼밥의 속도를 익히고 ‘원투원투’의 복싱 동작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극의 절정에서는 무대 위에 식탁 네 개가 차려지고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실제 고기를 구워 먹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시청각뿐만 아니라 후각까지 자극한 유쾌하고 감각적인 연출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연극의 연출을 맡은 이기쁨 동문은 창작집단 LAS의 대표이자, 한국연출가협회 ‘젊은 연출가상’과 대한민국 연극대상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한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다.
중학생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 동문은 모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해서도 영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영화는 생각보다 홀로 작업하는 시간이 많았다. 편집실에 혼자 있어야 하고 시나리오도 혼자 쓰다 보니 점점 외롭다고 느꼈다. 그러다 연극 워크숍을 갔는데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중간에 전공을 연극으로 바꿨고 지금까지 계속 연극을 하고 있다.”
연출이라는 자리는 팀의 수장 격이다. 연출가의 독단적인 선택만으론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모아서 결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극의 많은 역할 중에서 연출의 길을 택한 이 동문은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관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본인의 성향이 연출과 잘 맞는다고 말한다.
모교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인 그는 후배들에게 현장성 있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워크숍 수업에 동행해 학생들과 함께 극을 만든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는 편이다. 이 동문은 “주도적인 선택을 했을 때 경험하는 실패는 좋은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이 동문이 대표를 맡고 있는 창작집단 LAS는 지난해 10주년을 맞이했다. 당시 뜻이 맞는 동기 4명이 시작한 극단은 점점 규모가 커져 지금은 20명이 넘는 단원들이 활동하는 극단으로 성장했다. 이 동문은 극단을 이끄는 대표로서 최근 고민이 많다. “요즘은 극단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아직도 우리의 색깔을 규정하지 못하겠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만들지 단원들과 얘기를 많이 나눈다.” 그는 “창작집단 LAS가 동시대성을 지닌 극단이길 바란다”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생각과 변화에서 뒤떨어지지 않고 유연하게 변해갈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줄리엣과 줄리엣’,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등 창작집단 LAS의 극은 고전을 재해석하는 참신한 발상과 함께 현시대를 반영하는 시각으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집안의 반대로 사랑이 이뤄질 수 없는 이야기라면, ‘줄리엣과 줄리엣’은 이를 뒤틀어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아주 명확한 반대 이유가 보이는 관계로 설정했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여성 주연 극이 흔치 않은 연극 무대에서 소외된 여자 배우들을 위해 시작한 작품이다. 4년 동안 공연을 거듭하면서 점점 배워나갔고, 계속 새로운 문제의식과 의미가 생겨나는 작품이 됐다.
이 동문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연극 ‘손’을 꼽았다. 가족의 본질적 의미를 이야기하는 ‘손’은 동일한 사건을 각각 아들과 어머니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관객들이 물리적으로도 그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시점이 바뀔 때 무대의 방향을 달리했다. 동전의 양면을 보여주는 듯한 입체적인 무대장치와 구성이 호평을 받았다.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 무대를 구성하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 기술적인 약속이 많았고 배우들도 처음엔 혼란스러워했다. 다시 연출하라고 한다면 그렇게까진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외부적으로 LAS를 많이 알릴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은 영화와 다르게 끊임없이 변화한다. 최고의 한 컷을 담아내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이 동문은 영화와 비교했을 때 연극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으로 현장성을 꼽았다. “다른 무언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내 눈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봤을 때 드는 감정은 훨씬 폭발적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역시 관객들이 놀라거나 웃는 순간을 직접적으로 느낀다. 서로 에너지를 교류한다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날 배우의 컨디션과 극장 상태에 따라서 매 공연이 미세하게 다르다. 그걸 보는 재미로 한 작품을 여러 번 보는 관객들도 많다.”
언제나 이 동문의 바람은 단 하나다. 먼 훗날까지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는 ‘1인용 식탁’을 마무리하고 오는 6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조선 중기 천재시인 허난설헌의 시와 삶을 그린 창작뮤지컬 난설로 관객들을 찾아간다. 지난해 초연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으로 올해는 대학로 콘텐츠그라운드에서 만날 수 있다.
글=김이재 학생기자
사진=이봄이 기자
[출처] 이기쁨 연극연출가|작성자 한양대동문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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