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가족 60년 세월 잇는 인연의 이름 '한양'
시대를 아우르는 한양가족이 탄생했다. 지난해 ‘제10회 자랑스러운 한양공대인상’을 받은 한상준 (주)금성제어기 회장의 손녀 한윤재 양이 올해 모교 ERICA캠퍼스 전자공학부에 입학했다. 한 회장의 아들 한형섭 금성제어기 대표이사는 동 캠퍼스 전기공학과 87학번으로, 윤재 양이 졸업하면 3대가 모교 동문이 된다. 본보는 가정의 달 및 개교 81주년을 맞아 모교 공식 매거진 ‘사랑한대’와 함께 이들을 만났다.
한상준
한형섭
한윤재
Q. 올해 한윤재 학생이 20학번으로 입학하면서 3대가 한양인이 됐다.
상준 :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주변에 자랑도 많이 했다. 내가 1956년 경북 상주농잠고를 졸업했다. 내 고향이자 아버지 모교다. 거기서는 한양공대 가는 게 큰 영광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아침 조회 시간에 한양공대 합격자를 발표할 정도였다. 입학하고 교문 쪽 계단식 교실에서 전기과, 기계과, 토목과 등 100여명이 앉아 수업을 듣던 기억이 난다. 참 희망차고 즐거운 시절이었다. 1960년 학교를 졸업했는데, 딱 60년 만에 윤재가 입학했다. 이공계열에서 3대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들어가는 건 처음일 거다.
윤재 : 3대가 동문이 된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부담스럽다. 학교에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그래도 열심히 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손녀랑 딸이 되고 싶다. 코로나19가 없었으면 지금쯤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도 생기고 교수님들과도 인사했을 텐데, 온라인 강의로만 만날 수 있어 많이 아쉽다.
형섭 : 윤재가 입시 준비할 때 별다른 조언은 안 했다. 시키지 않아도 본인이 잘했다. “네가 꼭 한양대를 갔으면 좋겠다”고 하면 윤재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정해진 길을 가기보다 본인이 원하는 길을 스스로 결정했으면 했다.
Q. 대를 이어 한양대를 선택한 이유는.
형섭 : 솔직하게 말하면 강요였다(웃음) 할아버지가 한의사를 하셨기 때문에 집안에서 제 형은 의대에 가길 바랐다. 반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같은 멀쩡한 물건을 망가뜨렸다 재조립하는 걸 좋아했다. 공대 성향을 타고났는지 스스로도 뭔가를 만드는 게 참 재밌었다. 그래서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길이 만들어졌다. 아버지가 계속 해오신 일을 누군가 이어서 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회사가 전기 업종이라 과도 전기과를 선택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좋은 선택이었다.
상준 : 쟤(형섭)가 인수해야지, 회사를 누구 주겠나. 난 아들이 정말 전기과 가서 회사를 물려받을 거라고는 생각 안했다. 그렇지만 계속 (한양대 가라고) 종용했지(웃음)
윤재 : 저도 아버지랑 비슷하다. 언니는 음대고, 사촌들 중에서 저만 유일하게 이과다. 이쪽 공부가 더 편하고 다른 것보다 재미를 느꼈다. 평소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학교 얘기를 많이 들어 자연스레 한양대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전기 쪽이 제 관심사랑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Q.1978년 창업한 금성제어기가 국내 최대 규모의 배전반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버지가 세운 회사를 아들이 이어받았다.
상준 : 졸업 후 독일에서 자동제어를 공부하고 왔다. 연탄공장을 하던 지인 부탁을 받고 고장날 것 같으면 알아서 멈추는 생산설비를 만들어줬다. 고쳐서 기계를 재가동하면 되니 공장이 잘돼 소문이 났다. 그걸 계기로 자동화 회사를 차렸다. 해외 사업도 했다. 당시 중동에서 전기 계통 공사를 독점하던 독일을 제치고 우리가 자체 개발한 기술로 실적을 올렸다.
형섭 : 입사하고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첫 1년간은 복사만 했다. 펜치랑 드라이버도 잡아봤다. 전선, 배선, 철 가공, 조립 등 안 해본 게 없다. 한여름 현장에 12시간 머물면서 속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을 흘린 적도 있다. 회사에 들어와서 27년, 대표이사가 된 지는 3~4년 됐다. 우리 회사가 제일 잘하는 건 배전반이다. 전 세계에서 만드는 모든 배전반은 다 만들 수 있다. 내수와 수출이 반반인데, 앞으로는 수출에 좀 더 집중할 생각이다. 지난해 경기도 화성에 지은 시범공장보다 큰 규모로 대전에도 공장을 준비 중이다.
상준 : 형섭이가 직원들 의견 취합을 잘한다. 나는 창업자였기 때문에 누구도 내 말에 반론을 못했다. 그래서 내 뜻대로 하다 실패한 적도 많다. 형섭이는 직원들과 뜻을 공유하니 사업을 잘하더라. 요즘은 완전히 믿고 맡긴다.
Q. 만약 윤재 학생이 졸업 후 금성제어기에 입사하고 싶다고 하면.
형섭 :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지지한다. 대신 들어오면 저처럼 밑바닥부터 시키겠다(웃음) 미국에서 MBA 공부를 시켜 새로운 경영 기법을 배우게 할 거다.
윤재 : 제가 회사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걸 상상해본 적은 있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힘들 것 같다. 입사하게 되더라도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쌓은 다음 들어가고 싶다. 지금은 딱 정해진 꿈은 없다. 전기 분야를 좀 더 배우면서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Q. 한상준 동문은 2012년부터 모교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있다. 누적 금액만 1억7000여만원이다.
상준 : 아버지께서 늘 “나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먼저 도우라”고 말씀하셨다. 그 가르침을 항상 마음에 되새기고 애들한테도 강조한다. 이주(82.전기/전기공학과동문회 총무) 교수 말을 들어보니 대학생 10명 중에 1명이 절대빈곤이라고 한다. 내가 학교에 많이 기여하진 못해도, 최소한 전기과의 절대빈곤 학생들만은 어려움 없이 먹고 자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현재 전기공학부에 한 학기 6명씩, 인당 50만원을 매월 생활장학금으로 주고 있다. 회사가 잘 되면 학기당 20명까지 장학생을 늘릴 생각이다.
Q. 따님(손녀)을 비롯한 모교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형섭 : 시대 변화에 따라가는 것, 유망한 분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자기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걸 묵묵히 해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 우리 생각보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많고, 아주 사소한 거라도 그 자체만으로 크게 행복해할 수 있는 뭔가가 사람에게는 분명히 있다. 성공, 돈, 명예 등 인생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이 있다. 전 그중 자기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다. 본인이 선택한 길을 밀고 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상준 :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그게 기회인 줄 모른다. 준비 없이 기회를 잡으면 당연히 실패한다.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
글=최윤원 기자
사진=사랑한대 편집실
[출처] 3대 가족 60년 세월 잇는 인연의 이름 '한양'|작성자 한양대동문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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